​떨어진 안경

2017. 5. 24. 10:40마음 이야기/생각

 먹고 살기 위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뗀다. 장사 재료 준비를 하려 새벽에 일어나 첫차를 타고 시장을 향하기도 하고, 밀린 업무를 마무리하기 위해 아침 일찍 전철에 몸을 싣기도 한다. 매 출근길 풍경은 모든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있다. 각자의 사정을 안고 앞으로 걸어가는 길이기에.


 나 또한 더 나은 삶을 살고자 출근길에 동참한다. 한 시간 남짓 전철에 몸을 맡긴다. 열차 안 사람들의 모습은 진공포장된 냉동식품 같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님을 실감하기 좋다. 밀려들어오는 출근길 동지들의 열정은 무척이나 억세다. 더 이상 탈 수 없을 것 같은데도 그 좁은 공간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몸을 맡기고 햄버거를 만들어 열차가 흘러가는데로 흘러간다.


 오늘 아침 전동차에서 내리며 우연히 플랫폼에 떨어진 안경을 보았다. 백범 김구의 안경과 비슷한 뿔테 안경으로 안경닦이와 함께 떨어져 있었다. 밑에 안경닦이가 있고 위로 안경이 있는 것을 보니 안경닦이에 덮혀져 있던 안경이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짐작해 보건데 안경을 자주쓰는 사람은 아닌듯 하다. 주인이 잊어버린 것을 알게 됐을 때 표정이 상상되어 잠시 슬퍼졌다. 동지들은 슬퍼할 찰나의 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뒤에서 미는 힘에 휩슬리다 보니 어느새 개찰구를 빠져 나왔다.


 길을 걸으며 다시 생각했다. 떨어진 안경에서 주인의 사정이 보이는 듯 했다. 눈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안경을 써야만 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그 사람에게 안경은 계륵같은 존재임은 틀림 없다. 안쓰고 싶지만 필요한 순간엔 꼭 써야만 하는 계륵. 그에게 안경이 없는 것은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 아닐까. 물건 하나에도 그 주인의 사정이 담겨있다.


 인생에서 안경 하나가 중요할까. 값이 얼마나 된다고. 다시 사면 되는데. 그러나 출근길 속에서 잃어버린 안경은 삶의 허무를 느끼기엔 충분하다.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노력함에 있어서 잃어버린 안경은 김새는 일이다.


나도 모르게 '떨어진 안경'처럼 잃어버린 것이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내 삶에 힘빠지게 하는 것들이 있나... 아차하는 순간엔 이미 늦었겠지. 아쉬운 것은 잃어버리고 나서야 알게된다는 점이다.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나의 사정을 담고 있는 물건들아 내 곁을 떠나지 마려무나. 난 네가 필요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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