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apShot 세운상가

2019. 5. 11. 07:33사진 이야기/스냅샷

청계상가에서 바라본 세운전자상가. 청계천을 복원하며 없앴던 두 건물을 잇는 보행로가 다시 세워졌다.

세운상가는 죽을 뻔 했다 구사일생한 건물이다. 서울 한복판에 크고도 길다랗고 삭막해보이는 콘크리트 덩어리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도심 부적격 업종이라는 오명을 받았다. 19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전면 철거 의견이 제기됐다. 그 절정은 2006년 세운상가 일대를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하여 전체 상가를 철거한 후 녹지축을 조성하고, 주변 일대를 고밀도로 개발하는 계획이었다. 2009년에 세운상가 앞에 있던 현대상가 건물이 허물어졌다. 이제 세운상가의 차례였다. 허나, 보상 문제와 금융위기, 종묘 문화재 심의로 사업성이 떨어져 수익성이 악화됐고, 사업은 3년 넘게 진척이 없었다가 결국 2012년 12월에 이르러 철거 계획은 취소됐다. 이렇게 세운상가는 그 수명이 연장됐다.

 

세운전자상가에서 바라본 청계상가

세운상가는 1967년부터 1972년까지 세운, 현대, 청계, 대림, 삼풍, 풍전(호텔), 신성, 진양상가가 차례로 건립된, 총 길이 약 1km에 달하는 메가스트럭쳐이자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이다. 준공 당시에는 쌀가게와 연탄가게를 빼고는 서울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갖춘 상가이자 고급아파트였다. 특히 70-80년대 가전제품과 80-90년대 컴퓨터, 전자부품 등으로 특화된 상가로써 입지를 굳혔다.

 

상가 단지가 들어선 지역은 본래 일제강점기 말에 일제가 연합군의 공습 폭격에 대비하여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공터로 비워둔, 이른바 소개공지(地, 공개공지와 같은 말) 중의 한 곳이었다. 광복 및 6·25전쟁 이후 이곳에 2200여 가구의 판잣집이 무질서하게 들어서고 이른바 종삼()이라 불리는 윤락촌이 형성됐다.

 

 

제14대 서울시장 김현옥이 윤락업소가 즐비하던 종로와 퇴계로 일대에 대한 정비 사업을 추진했다. 1966년 대한민국 최초의 도심재개발사업으로 계획돼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를 맡았다. 2년만인 1968년 1~4층은 상가, 5층 이상은 주거 공간으로 이루어진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단지인 세운상가가 탄생했다. (구역별로 시공사가 달라 설계 원안대로 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아있다.)

 

 

1967년 7월에 가장 북쪽에 위치한 현대상가(13층)가 준공된 뒤 1968년까지 세운상가가동(13층)·청계상가(8층)·대림상가(12층)·삼풍상가(14층)·풍전호텔(10층)·신성상가(10층)·진양상가(17층)가 차례로 준공되어 서울 도심의 종로·청계천로·을지로·퇴계로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통칭 세운상가가 조성됐다.

 

 

약 20년간 호황을 누린 세운상가의 전성기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강남 개발이 시작됐고, 종로 이외에도 서울 곳곳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게다가 1987년 용산전자상가가 생기면서 이곳에 있던 많은 상가들이 용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 때문에 2000년대 들어서 급격한 슬럼화로 철거요구가 빗발쳤던 것이다.

 

 

세운상가는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거듭나는 중이다. 2014년 철거 계획이 취소되고 도시재생으로 방향을 바꿔 서울시는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17년 세운상가를 비롯해 그 뒤로 청계상가와 대림상가를 연결하는 보행로를 신설했고, 22년까지 대림상가에서 인현상가와 진양상가까지 연결할 계획이다. 그 끝은 '종묘부터 남산 아래까지 도심 보행축을 연결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보행 데크엔 스타트업 창작·개발 공간인 '세운 메이커스 큐브'가 조성되어 20여 개 업체가 입주했고, 세운상가 8층 옥상에는 남산과 종묘 등 도심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겸 쉼터 '서울옥상'이 조성됐다. 또한 옛 세운초록띠공원은 다양한 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다시세운광장'으로 전면 개편됐고, 광장 지하에는 다목적 홀과 세운문화재전시관이 조성됐다. 세운문화재전시관엔 공사 중 발견된 조선시대 한성부 중부관아터와 유적을 보존해 둔 곳이다.

 

 

세운상가 홈페이지엔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세운전자상가는 '세계의 기운이 모이다'라는 뜻을 가진 국내 최초의 종합전자상가이자 40년 전통의 전자상가 입니다. 오래된 전통만큼 수많은 기업들이 이곳을 거처갔으며 TG삼보컴퓨터, 한글과 컴퓨터, 코맥스도 모두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서울의 중심인 종로에 위치한 도심전자산업지역의 메카로서 수많은 장인들과 전기전자부품, 전기재료, 컴퓨터반도체, 음향기기, 전자제품, CCTV, 오락기기, 노래방기기, 조명기기 등 다양한 전자상품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사업성 약화로 철거계획이 취소됐지만, 그 이면엔 콘크리트 덩어리 그 자체를 '역사'로 보는 인식이 생겨 살아난 세운상가. 지금은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고, 많은 젊은이들이 찾는 유명한 카페도 있다. 

 

 

생각없는 도시계획은 없어야 하겠지만, 무분별한 철거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인사동, 익선동 등 사라져가는 1910년대 한옥이 사라지고 있다. 남은 북촌마저 사라질까 안타깝다. 이렇듯 시대마다 우리의 인생을 대변하는 장소들은 국민적 동의를 얻어 무조건적인 재개발을 규제하고 전통과 역사를 만들어가는 건 어떨까싶다. 새로운 것도 좋지만, 과거 없이 미래가 없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